세 아이들을 데리고 무작정 캐나다에 온지 3 년하고도 6 개월이 지났다 . 도착해서 적응도 하기 전 , 한달여 만에 찾아온 실전 같은 외국생활에 화들짝 놀라 한국으로 다시 돌아갈 생각까지도 했었는데 어느덧 이곳 생활 4 년차를 향해 가고 있다 . 다들 이렇게 5 년을 채우고 10 년을 채우고 20 년을 채우고 그렇게 1 세대 , 2 세대 , 3 세대 대를 이어 이곳에 뿌리를 내리고 살게 되는 것 같다 . 이 곳에서의 3 년 6 개월동안 겪은 일들이 어찌 보면 한국에서의 47 년 보다 훨씬 더 버라이어티 하다고 해야할 까 ? 지금가진 대충 필요했던 일들이나 원하는 일들이 이루어지긴 했던 것 같다 . 아주 극적으로 애간장을 다 녹이면서 ... 막차에 어거지로 올라타는 듯한 느낌이 이럴까 ? 동업을 시작하자 마자 승냥이 이빨을 번뜩이며 드러내는 놈들로 부터 달아나 미래를 고민하며 좌절과 후회의 클라이맥스로 치닫고 있을 때 생각지도 않았던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 새로운 일에 적응하며 영주권도 신청하고 비자도 연장하고 여유가 어떻게 생겨 먹은 것인지에 대해 생각을 막 시작하려는 찰나 딱 맞춰 문을 닫아버린 회사 , 규모가 작은 회사도 아니었는데 사전 설명없이 어느 날 갑자기 문을 닫았다 . 영주권을 진행하고 있었기에 정말 마른 하늘에 날벼락을 맞은 느낌이었다 . 그것도 한방이 아니라 한 10 방 정도 ... ( 내가 벼락을 맞아 본적이 있었나 ?) 16 년전쯤 한국에서 음주운전을 한적이 있었다 . 한국에선 사면이 이루어졌고 실효가 되었다 . 잊고 살고 있었다 . 내가 고위공직자가 되어 청문회에 나설 일도 없을 테니 철없을 때의 그 행동이 내 발목을 잡을 일은 없다고 생각했다 . 그런데 착각이었다 . 고위 공직자가 된 것도 아닌데 그 때의 일이 내 발목을 아주 씨게 잡았다 . 영주권을 받으려면 사면을 받아야 했고 그 사면을 받기 위해 카운셀러로 부터 심리 상담까지 받았다 . 7 주에 7 시간의 상담을 받고 나니 Letter 를
AINP 신청을 2018년 3월초에 했고 AINP 인터뷰는 2018년 11월말에 했다. 그리고 주정부로부터 Decision Letter를 12월 4일에 받았다. 연방 File NO를 2019년 3월에 받았으며 Medical examination은 2020년 10월에 받았다. 아직 최종 결과가 나오려면 몇 개월이 더 걸리겠지만 Medical examination까지만도 2년 7개월이 걸린 것이다. 비슷한 시기에 신청한 사람중 PR을 벌써 받은 사람도 있고 또 어떤 사람은 아직 Medical examination도 받지 못한 사람도 있으니 나는 딱 중간 쯤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게 진행되고 있는 것 같다. 어찌 돌아보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는 것 같지만 매 순간 순간 일이 잘못될까 봐 조바심 내며 안달하며 스트레스를 받으며 지내고 있는 것이다. 조바심 낸다고 빨리 진행되는 것도 아니지만 2년 반을 넘게 영주권만 바라보고 있으니 조바심이 안 날래야 안 날 수가 없는 것 같다. PR Card가 나오기 전까지는 달라지는 것이 없을 것 같다. 시간을 거슬러 2018년에 PR의 첫 관문인 AINP 인터뷰가 있었다. 인터뷰중 심사관이 이 사람은 영어로 의사소통을 하는데 문제가 있다고 판단을 하거나 실수로 잘못 대답을 하거나 할 경우 승인이 안될 수가 있다는 이야기를 주변 사람들을 통해서 많이 듣다 보니 엄청 긴장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곳에 생활하면서 영주권이나 비자를 진행하다 보면 주변에 도움되는 경험담을 들려주는 많은 분들을 만날 수 있다. 이 분들 모두 예전에 지금의 나와 같은 단계를 밟아서 영주권을 받았기에 그 분들 이야기를 듣다 보면 모두들 영주권과 비자 진행에 대해서는 정말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 대부분의 이민자들에게는 1박2일을 꼬박 이야기해도 다 이야기할 수 없는 엄청난 정착 스토리를 가지고 있다 보니 영주권을 받기까지 그리고 그 이후 이민자로서 살아온 그 분들의 무용담을 듣다 보면 지쳐서 의기소침해져 있던 내 자신을 다시금 일